[일의 성과 극대화]성찰하는 사람이 계속 성찰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계속 공부한다

1. 어떤 분이 질문한다. SNS에서는 좋은 뜻의 리더들도 많고, 배우려하고 자기 성찰을 하는 분들도 많은데 왜 밖에 나가면 그런 분들을 찾기 어려운가?


2. 이에 대한 답은 둘 중 하나일둣 하다. 하나는 SNS에서 이분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또 하나는 SNS에서 열심히 글을 읽거나 글을 남기는 분들은 그나마 배우고 성찰하는 분들인데, 그 절대 숫자가 적다는 것이다. SNS는 작은 공간이다. 물론 전자의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물론, 외부에도 뜻이 있고 훌륭하신 분들이 많다)


3. 흥미롭게도 자기성찰이나 공부가 그리 필요 없는 분들은 자기 성찰이 과도하고, 더 배우려 한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스스로 구성원에게 상처 주는 리더가 아닐까라고 고민하는 분들 중에 문제 있는 분들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정작 자기성찰이나 리더십 교육이 필요한 분들은 교육이나 코칭, 피드백도 안 받고 글도 책도 안 읽고 관심도 없다.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4. 갑질과 폭력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많은 분들 중 과연 자기성찰을 하거나 리더십 교육이나 코칭을 스스로 찾아 받은 분들이 얼마나 될까? 그나마 일반 임직원들은 회사에서 억지로 시키기라도 하고 주기적으로 피드백이라도 받지만, 아주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위에 있는 분들은 아무도 권고하지 않고 그 누구도 감히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이에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5. 공부가 별 필요없는 분들은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더 공부하는데, 막상 필요한 분들은 자신이 뭔가 안다고 생각하면서 더 공부를 안 한다. 책을 더 안 읽어도 될 분들은 더 열심히 읽는데 막상 읽을 필요가 있는 사람은 안 읽는다. 운동이 별 필요가 없는 분들은 더 열심히 운동하는데 진짜 필요한 사람은 안 한다. 소위 '마태의 법칙'이 작동한다. 코칭을 받지 않아도 될 분들은 더 열심히 받는데 막상 받아야 할 사람들은 무시한다. 법 앞에 떨 필요가 없는 사람은 작은 위반에도 공권력 앞에서 벌벌 떠는데, 권력을 가진 범법자들은 법앞에서도 당당하고 자신은 법의 대상이 아닌둣 행동한다. 양심에 예민하지 않아도 될 사람은 작은 것에도 예민하여 힘들어하고 노심초사 하는데, 막상 예민해야 할 사람들은 양심에 화인 맞은듯 당당하고 뻔뻔하다. 공감과 동정심을 그만 가져도 될 사람은 약한 사람들에게 더 도움을 주려 노력하는데, 막상 공감과 동정심이 필요한 사람은 울고불고 사정해도 눈 하나 꿈쩍 안한다.


6. 한 병원에 소란을 피우는 무서운 환자들이 가끔 있어서 이를 방지하고자 벽의 곳곳에 "병원에서는 정숙을 지켜주세요"라는 메시지를 걸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후 환자들이 매우 위축된 모습으로 의사를 대했다.  기존에 정숙했던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 메시지를 보고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생가해서 더 정숙하려 애썼던 것이다. 반면, 소란을 피운 환자들은 그 문구에 괘념치 않고 동일하게 행동했다.


7. 아이러니하지만 이것이 벌어지는 현상이다. 여기서 실망할 것인가? 그럴 이유는 없다. 다른 사람 원망할 필요 없이 나부터 잘하면 된다. 단 하나의 빛만으로도 어둠을 밝힌다. 그 수가 적더라도 빛이 반짝거린다면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


8. 다른 사람들일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우리 스스로를 더 단련하여 자신의 희미한 빛을 더 강하게 하자.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길이다.



출처: 일의 격(신수정 저자/ 전 KT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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